북한방문기8-군사분계선에서 만난 지난 역사

우리는 평양 개성고속도로로 개성을 진입하고 곧 군사분계선 입구에 도착했다. 

군사분계선 전초 입구에 관관버스들이 서있었고 중국관광객들로 입구안내소가 북적였다.  최근에 부쩍 중국관광객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가끔 서양의 외국인 관광객들도 보였다.

 안내원이 군사분계선 안쪽으로 들어갈 때는 항상 군인이 동행을 한다며, 안내군인이 와서 우리에게 판문점지역을 설명해주었다. 

우리가 군사분계선안으로 들어서니 길 양쪽에 논농사를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한반도의 전통적인 농작지인 개성평야의 옥토가 군사분계선안에 있지만 이 옥토속에서 나는 농사물들은 이곳 주민들은 물론 북조선의 보물일 것이다. 

우리는 곧 정전담판 회의장을 방문하였다.

 1951년 6월 30일 유엔사령관 미국 Ridgway 사령관의 제의에 의해 시작된 정전담판을 개성지구에서 할 수 있도록 북에서 급하게 설치한 건물이 아직도 역사의 증인으로 자리하고 있다. 바로 옆에는 정전협정 조인장이 있다. 

지금은 안쪽이 훵한 빈장소이지만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되는 날에는 북조선 남한 중국 미국및 유엔군인들이 빼곡이 앉아 역사적인 휴전협정을 조인한 증인들이있었다. 

이 많은 증인들이 이제는 이세상에 없는 사람이 많겠지만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마치는 직접적인 관계자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 

전쟁속에서는 승자도 패자도 없고 오직 희생자들만 있다.

우리는 곧바로 판문각으로 이동해 판문점을 사이로 자유의집을 보았다. 

안내군관중위는 4월 27일 판문점선언을 하면서 문재인대통령과 김정은위원장이 심은 통일나무를 보라며 판문점과 남측 건물사이 관상용 향나무들 사이에 잘 보이지 않는 동그랗게 보이는 소나무를 지적하면서 사진을 찍어 보라고 한다. 

안내원들이 그 통일소나무 사진을 찍는 것이 우리보다 더 신나하는 것 같다.

우리는 이렇게 판문각방문을 마치고 개성시내로 들어갔다. 

개성은 한국전쟁중 폭격을 적게 받은 곳으로 천년의 역사를 아직도 보존하는 곳으로 12개의 역사유적이 유네스코에 2-13년 등재되었다.

 개성시내에 있는 개성전통려관은 한옥촌을 이루는 곳으로 일제시대이전부터 개성이 상거래중심지로서, 아직도 남아있는 옛날 여관으로 지금도 숙박시설과 식당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개성려관식당에서 가야금 연주와 더불어 9첩반상으로 점심을 하고, 다음일정인  선죽교, 표충비 와 숭양서원을 방문했다. 

선죽교에는 아직도 붉은 자국이 남아 있고, 조선왕조들이 정몽주의 충절을 찬양하여 세운 비들을 설명하는 강사안내원이 조선왕조의 위선이 가득한 비를 세운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권력들은 이렇게든 저렇게든 자기네 유리한대로 그시대상으로 백성들을 복종시키고 지배하기위한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뜻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더 절실히 느낀 것은 북이 빨리 변화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성에서도 학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통학을 하고 평양에는 전기자전거가 다니고 있다. 

아직도 미국과 유엔의 경제제재로 발전을 못하고 있지만 북조선식으로 발전하는 모습은 계속 눈에 띄었다.

이 짧은 기행문을 쓰고 있는 오늘은 이미 싱가포르 북미회담도 마치고 미국에서 한미연합군사훈련이 북에게 도발적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전쟁게임을 중단하겠다고 했다. 

북은 더 빠른 변화를 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내년에도 이어질 북 바로알기 여행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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